책소개
“시인은 진정 불을 훔치는 자입니다.”
자유와 미지를 갈망한 불후의 투시자
아르튀르 랭보의 사랑과 고통, 광기와 착란
《랭보 서한집》이 읻다의 서한집 시리즈 ‘상응’의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열다섯 시절부터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과 《일뤼미나시옹》에 담긴 작품을 집필한 스물한 살 무렵까지,
랭보의 창작 시기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서한을 한데 묶었다. 또한 절필 이후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편지 몇 편을 더해 인간 랭보의 궤적을 좇으며 그의 시가 바랐던 하나의 비전을 그렸다.
책의 첫머리에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청년 랭보의 사진과 함께 베를렌과 누이동생 이자벨 등이 그린 랭보, 서한집에 등장하는 시인들의 회합을 그린 팡탱라투르의 그림 〈테이블 구석〉,
아프리카 체류 시기의 사진 등을 수록했다. 말미에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랭보 연구자인 옮긴이가 작성한 편지 해설과 연보를 수록하여 당시 랭보와 주변인들이 처한 상황, 역사적 사건,
19세기 프랑스 문단의 동향 등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 본문 곳곳에는 편지 원본 사진을 함께 실어 자유분방한 필체와 재치 있는 그림을 통해 시인의 육성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신들이 인간을, 무한한 세계를 듣는다!”
아르튀르 랭보는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이미 문학사에 새겨질 명작을 남겼으면서도 갑작스레 문학을 떠나 여생을 상인으로 보낸 극적인 생애로 유명하다.
우리에게도 영화 〈토탈 이클립스〉, 뮤지컬 〈랭보〉 등을 통해 반항적이고 위태로운 청춘이자 영원과 미지를 찾아 방랑하는 젊은 천재로 잘 알려진 바 있다.
이 책의 1부 ‘창작 시기 1870~1875’에 담긴 편지와 메모는 랭보가 ‘삶의 혁명’을 부르짖던 시기에 쓰인 것으로, 질풍노도 시기의 방황, 세상에 대한 조소와 함께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2부인 ‘절필 이후 1878~1891’에는 창작을 돌연 중단하고 아프리카로 떠난 뒤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오직 사업과 일상의 단편들만이 담겨 있다.
이렇듯 이 서한집은 랭보의 시학뿐 아니라 한 인간의 생명력과 시의 기운이 움직이고 소멸하는 과정을 찬찬히 훑는다.
“시인은 진정 진보의 증폭자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또한 랭보의 시론을 대표하는 글이자 현대시의 포문을 연 글로 널리 알려진 ‘투시자voyant의 편지’ 또는 ‘견자見者의 편지’(1871년 5월 15일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랭보가 편지에 첨부한 시 12편을 담고 있다. 이 12편 가운데 6편은 생전에 정식으로 발표되지 못했기에, 편지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변변한 지면을 얻을 수 없었던 무명의 시골 소년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매체는 오직 편지뿐이었기 때문이다.
랭보가 내뱉는 뜨겁고 거침 없는 낱말들 가운데서 우리는 시인의 진지한 열정과 냉소, 그를 만든 인간 관계와 외부의 영감, 삶의 이상과 현실의 충돌에서 오는 분노,
친우와 스승, 가족에 대한 사뭇 정중한 존경과 서툴지만 다정한 마음을 낱낱이 읽을 수 있다. 이 편지들은 내밀한 감정의 표현인 동시에 그가 시인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벼리는 과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랭보 서한집》은 이렇게 한 예술가의 영혼을 비출 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엿보게 해준다.
“그리하여 나는 가리라, 멀리, 아주 멀리”
랭보는 ‘착란’을 통해 기존의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나 현실을 새로운 이미지로 그려내고자 했다. “온갖 형식의 사랑과 고통, 광기”를 경험하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독을 길어내는 과정을 통해,
다시 말해 시적 이미지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통해 시인은 “위대한 환자, 위대한 범죄자, 위대한 저주받은 자, 지고의 학자”, 즉 ‘투시자’가 된다.
랭보는 이렇듯 시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미지’에 다다르기 위한 현실을 재창조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괴물스러운 영혼’을 만들어 모든 대상을 “투시”하고자 했다.
“제 말은, 투시자여야 하며,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거대하고, 조리 있는 착란을 통해 투시자가 됩니다.“
-아르튀르 랭보, 1871년 5월 15일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일명 ‘투시자의 편지’) 중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현실 속에 ‘숨은 신들’(다시 말해 타자들이) 저마다 제 말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고쳐 말하고 다시 고쳐 말하려는 노력과 그 희망,
그리하여 늘 다시 말하는 언어인 시의 언어는 모든 주체가 타자가 되고 그 모든 타자가 또다시 주체가 된다고 믿는 희망이 시의 언어의 기획 속에 들어 있다”고 평한다.
랭보의 이런 시론에는 “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절실했던 문제는 길고 짧은 세월이 흐른 뒤 다른 형식으로 만인에게도 절실한 문제”가 되는 문학의 신비가 담겨 있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미셸 뷔토르는 랭보의 초기 작품에 “독특한 표현의 힘, 경제성, 밀도, 에너지”가 담겨있으며 “현실과 마찬가지로 상상적인 것을 아주 힘차게 보게 하는 어떤 능력”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랭보는 우리에게 우리 시대의 시를, 아직 존재하지 않은 어떤 시를 상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미셸 뷔토르, 《리르Lire》 인터뷰 중에서
생애 단 6년 동안 시를 썼고, 그 외에도 많은 글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편지는 랭보의 문학론과 창작 과정 및 삶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랭보에게 편지는 단순히 사적인 글쓰기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작품을 전하는 매체였으며, 동료 문인들에게 자신의 시적 통찰과 진지함을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편지는 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때로는 단순한 논평을 넘어 그 자체가 시적인 성찰이 된다.”(옮긴이의 말) 근현대 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표지하는 ‘투시자 편지’가 보여주듯,
이 책에 수록된 편지들에는 이처럼 “자유와 미지에의 욕구가 현실과 타인을 마주하며 형상을 취하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상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결해 드립니다.
게시물이 없습니다